미국 FERC, AI 데이터센터 전력망 연결 가속한다...대규모 전력 수요 '계통 연계' 절차 대폭 손질...6대 권역 전력망 운영기관에 직권 명령, 증설 비용은 수요자가 더 부담하고 유연 부하 입증 땐 심사 60일로 단축
미국 FERC가 AI 데이터센터의 전력망 연결 절차를 대폭 손질했다.
[한국정보기술신문]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가 6월 18일(현지시간)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비롯한 대규모 전력 수요 시설이 전력망에 더 빠르게 연결되도록 하는 조치를 내놨다. FERC는 미국 내 전력의 주(州) 간 송전과 천연가스·석유의 거래 등을 감독하는 연방 규제기관이다. 이번 조치는 'AI 팩토리'로 불리는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생산 설비, 첨단 제조 시설 등이 전력망에 접속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으로, 반도체 칩 설계사 엔비디아(NVIDIA)는 자사 블로그에서 이를 두고 전력망 부담을 덜고 전기요금을 낮추며 산업 기반을 키우는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여기서 '계통 연계(interconnection)'란 발전소나 대규모 전력 사용 시설을 전력망에 안전하게 연결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승인 절차를 말한다. 새로운 시설이 전력망에 붙으려면 전력 운영기관의 검토와 설비 보강을 거쳐야 하는데, 신청이 밀리면서 이 절차가 여러 해씩 걸리는 '대기열(queue) 병목'이 미국 전력망의 큰 숙제로 꼽혀 왔다. AI 서비스가 늘며 막대한 전력을 쓰는 데이터센터가 급증한 것이 배경이다. FERC가 말하는 '대규모 부하(large load)'는 통상 20메가와트(MW)를 넘는 전력 수요 시설을 가리킨다.

6대 권역 운영기관에 직권 명령...'법적 안정성'까지 노렸다
이번 조치의 핵심은 FERC가 통상의 규칙 제정 절차 대신 빠른 방식을 택했다는 점이다. 미국에는 여러 주에 걸친 전력망을 운영하는 권역별 계통운영기관(grid operator)이 여섯 곳 있는데, FERC는 이들 각각에 연방전력법(FPA) 206조에 근거한 '소명 명령(show cause order)'을 동시에 내렸다. 소명 명령이란 규제기관이 사업자에게 현행 제도를 정당화하거나 고치도록 직접 요구하는 행정 조치를 말한다. FERC는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사용자에 적용되는 요금·접속 규정을 정당화하거나 개편하라고 각 운영기관에 요구했다.
이는 새로운 규칙을 처음부터 만드는 '규칙 제정 공고(NOPR)' 절차가 마무리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과 대비된다. FERC는 권역별 상황에 맞춘 명령을 따로 내리는 방식을 택했는데, 이는 전국 단위의 단일 규칙보다 주 차원의 법적 다툼에 견디기 쉬워 정책의 안정성을 높인다는 분석이 나온다. FERC의 로라 V. 스웻 위원장은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수요의 빠른 증가가 송전 환경을 바꾸고 있다며, 규제당국이 이 문제에 정면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조치는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DOE) 장관이 2025년 10월 FERC에 대규모 부하 연계 문제를 다루도록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라이트 장관과 제임스 댄리 부장관은 FERC의 이번 결정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증설 비용은 수요자가...유연 부하엔 60일 단축 심사
새 틀에서 대규모 수요자는 더 이상 대기열에 수동적으로 줄 서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필요로 하는 설비를 함께 짓는 능동적 참여자로 규정된다. 엔비디아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세 가지를 뜻한다. 첫째, 대규모 수요자가 자신이 쓰는 전력망 보강에 드는 비용을 스스로 부담해 기존 일반 가입자에게 비용이 전가되는 부담을 줄인다. 둘째, 새 발전 설비를 함께 들여와 전력 수요가 느는 만큼 공급도 함께 늘린다. 셋째, '유연 부하(flexible load)'를 제공해 전력망 운영자가 전력 사용이 몰리는 시간대를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도록 돕는다.
유연 부하란 전력망 상황에 따라 사용량을 줄이거나 시간대를 옮길 수 있는 전력 수요를 말한다. FERC와 에너지부 방침에 따르면, 이처럼 전력망 여건에 맞춰 사용량을 조절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수요자는 더 빠른 절차를 밟을 수 있다. 라이트 장관이 제시한 방향에 따라 연계 검토 기간이 60일까지 짧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더 빠른 연결이 아니라 더 똑똑한 연결이라는 것이 엔비디아의 설명이다.
"수요 늘면 요금 내린다"...버클리연구소·각 주 사례
엔비디아는 대규모 수요가 늘면 오히려 전기요금이 내려갈 수 있다는 논리도 폈다. 전력망은 막대한 초기 투자가 드는 고정비 중심의 시스템이어서, 수요가 효율적으로 늘어나면 그 고정비가 더 넓은 사용량에 분산돼 단위당 가격이 내려간다는 것이다.
엔비디아는 근거로 미국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의 연구를 들었다. 이 연구는 한 주의 전력 소비량이 10% 늘 때마다 소매 전기요금이 킬로와트시(kWh)당 약 6센트 내려가는 상관관계가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kWh는 전력 사용량을 재는 단위로, 1킬로와트의 전력을 한 시간 쓴 양을 뜻한다. 엔비디아는 전력망을 제대로 키우면 비용이 내려간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실제 사례로는 미국 노스다코타주가 데이터센터 23곳을 들인 뒤 전국에서 가장 큰 전기요금 인하를 기록했고, 미시시피·루이지애나·버지니아주도 일찍 대규모 수요를 유치해 요금과 전력망 현대화, 투자 측면에서 효과를 보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국 전력회사 PG&E는 적절한 조건이 갖춰질 경우 데이터센터 부하가 1기가와트(GW) 늘 때마다 고정비 분산 효과로 전기요금이 1~2% 내려갈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반대로 새 수요를 끌어오지 못하는 주는 줄어드는 가입자에게 비용이 몰려 가정과 소상공인의 요금이 오를 위험이 있다고 엔비디아는 지적했다.
AI 팩토리, 전력망 '짐'에서 '자산'으로...엔비디아 구상
엔비디아는 이런 틀로 지어질 시설들이 차세대 산업 경쟁력을 떠받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AI 기반 신약 개발, 반도체 설계와 첨단 제조, 기상·기후 분석, 차세대 에너지 시스템 등이 이런 시설에서 구동될 분야로 꼽혔다.
엔비디아는 FERC 조치와 발맞춰 자사가 AI 기업 에메랄드AI(Emerald AI), 여러 에너지 기업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AI 팩토리를 짓고 있다고 밝혔다. 이 시설들은 처음부터 '유연한 전력망 자산(grid asset)'으로 설계돼, 자체 발전 설비를 전력망에 함께 들여오고 전력망 상황에 실시간으로 반응하며 주변 지역의 전력 안정에 기여하도록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엔비디아는 상용 배치가 올해 안에 시작된다며, 이것이 전력망에 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안정성과 효율의 토대가 되는 미래의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주 규제당국은 권한 침해 우려...해석엔 신중함 필요
다만 이번 조치를 둘러싼 시각이 한쪽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주별 공익사업 규제기관을 대표하는 전국규제기관협의회(NARUC)는 그동안 FERC가 부하 연계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하는 것이 소매 요금을 다루는 주(州)의 권한을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내 왔다. FERC가 연방의 송전 관할권과 주의 소매 요금 관할권 사이 경계를 어떻게 긋느냐에 따라, 이번 사안을 넘어선 권한 다툼으로 번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대규모 수요자에게 증설 비용을 더 지우는 방향이 실제로 일반 가입자의 부담을 얼마나 덜어 줄지는 각 권역 운영기관이 내놓을 후속 제도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엔비디아가 내세운 요금 인하 논리 역시 자사 사업과 직접 맞닿은 기업의 평가라는 점에서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지역에 따라 요금 인상과 전력망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미국 안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번 FERC 조치가 실제로 전기요금과 전력망 안정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6대 권역 운영기관의 제도 개편과 그 시행 과정을 지켜봐야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정보기술신문 클라우드분과 양인석 기자 news@kitpa.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