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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로 택시 호출"...서울시, 어르신 위한 'AI 에이전트' 개발 착수
3년간 29억 투입, KAIST·고려대와 협력...디지털 격차 해소 '약자동행' 정책 가속화, 개인정보·AI 윤리 과제는?
[한국정보기술신문] 서울AI재단이 디지털 기기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을 위해 음성 명령만으로 스마트폰 앱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AI 에이전트'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개발(R&D) 과제로 선정된 이 사업에는 향후 3년간 총 29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1 서울AI재단을 중심으로 KAIST, 고려대학교, 기술 스타트업 ㈜플루이즈가 참여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고령층의 모바일 접근성을 높여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서울시의 핵심 시정 철학인 '약자와의 동행'을 구체화하는 대표 사업으로 평가받지만,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AI 기술의 특성상 개인정보 보호와 윤리적 책임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디지털 장벽, AI로 넘는다"...서울시의 'AI 동행' 프로젝트 본격화
이번 프로젝트는 서울AI재단(이사장 김만기)이 주관하며, 국내 최고의 학술·연구 기관인 KAIST와 고려대학교, 그리고 기술 상용화를 담당할 스타트업 ㈜플루이즈가 공동 연구기관으로 참여한다. 개발의 핵심은 음성 기반의 'AI 에이전트 기술'로, "택시 불러줘" 또는 "병원 예약해줘" 와 같은 일상적인 대화형 명령을 내리면 AI가 스스로 여러 앱을 실행하고 조작해 과업을 완료하는 방식이다.
사업은 지난 5월 과기정통부와의 협약 체결을 통해 본격화되었으며, 체계적인 로드맵에 따라 진행된다. △2025년에는 어르신들의 음성 데이터를 집중적으로 수집하고 기초 기술을 개발하며 △2026년에는 시범 서비스를 출시해 실제 사용자들의 피드백을 반영해 기술을 고도화한다. 마지막으로 △2027년에는 어르신 대상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기술을 본격적으로 확산할 계획이다.
이 사업의 근본적인 목표는 스마트폰 앱 사용을 "낯설고 어려운 일"로 여기는 고령층의 디지털 장벽을 허무는 것이다. 이는 서울시가 추진하는 '약자와의 동행' 정책의 핵심 가치와 맞닿아 있으며, 기술을 통해 사회적 포용을 실현하려는 시도다. 특히, 정부가 직접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나, 공공기관이 촉진자 역할을 맡아 민간의 첨단 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이를 사회 문제 해결에 접목하는 새로운 형태의 공공-민간 협력 모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는 향후 다른 취약계층을 위한 '선한 기술(Tech for Good)' 정책의 중요한 선례가 될 수 있다.
단순 '비서'를 넘어 '집사'로...차세대 기술 'AI 에이전트'란 무엇인가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 기술인 'AI 에이전트'는 기존의 음성 비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현재의 AI 비서가 주로 정보를 검색하거나("맛집 알려줘") 단일 앱의 특정 기능을 실행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AI 에이전트는 사용자의 최종 목표를 이해하고 여러 앱을 넘나들며 복잡한 과업을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지능형 집사'에 가깝다. 예를 들어, "식당 예약해줘"라는 명령에 단순히 식당 목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예약 앱을 실행하고 시간과 인원을 조율해 예약을 확정하는 단계까지 스스로 처리한다.
이러한 능력은 AI 에이전트가 외부 도구(앱, API 등)와 상호작용하고, 다단계의 과업을 논리적으로 계획하며, 목표 달성을 위해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기술적 특성에서 비롯된다. 이 기술은 특정 분야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가트너, 맥킨지, IBM 등 세계적인 IT 시장 분석 기관들은 AI 에이전트를 2025년 가장 주목해야 할 핵심 AI 트렌드로 지목하며, '응용 AI의 차세대 진화'라고 평가하고 있다. 서울시의 이번 프로젝트는 이러한 세계적 기술 흐름의 최전선에 서 있는 셈이다.
더 나아가, AI 에이전트의 등장은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 방식(HCI)에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한다. 지난 수십 년간 사용자는 아이콘을 누르고 메뉴를 클릭하는 '직접 조작' 방식으로 컴퓨터와 소통해왔다. 하지만 AI 에이전트는 사용자가 최종 목표, 즉 '의도'만 전달하면 그 과정을 시스템에 '위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연다. 따라서 이번 사업은 단순히 고령층을 위한 편의 도구를 만드는 것을 넘어, 미래 소프트웨어의 작동 방식을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심화되는 '디지털 고립'...어르신들이 마주한 현실
서울시가 AI 에이전트 개발에 나선 배경에는 고령층이 겪는 심각한 '디지털 고립'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의 조사에 따르면, 일반 국민의 AI 활용 경험률은 51%에 달하는 반면, 고령층을 포함한 취약계층은 30% 수준에 머물러 상당한 격차를 보였다.
이러한 격차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사회적 고립과 단절로 이어진다. 택시 호출, 은행 업무, 병원 예약 등 필수적인 사회 서비스가 빠르게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디지털 기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은 일상생활에서 배제되기 쉽다. 이는 자신감과 효능감의 저하로 이어져 새로운 기술 습득을 더욱 꺼리게 만드는 악순환을 낳는다.
물론 그동안 여러 지방자치단체와 기관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디지털 문해력 교육을 시행해왔다. 하지만 다수의 수강생을 대상으로 하는 일방적인 교육 방식은 개인별 편차를 고려하기 어려워 실질적인 효과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번 AI 에이전트 프로젝트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제시한다. 기존 방식이 사용자가 복잡한 기술에 적응하도록 강요했다면, A에이전트는 음성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소통 방식을 통해 기술이 사용자에게 맞춰지도록 설계되었다. 이는 '사용자의 부족함'이 아닌 '기술 디자인의 부족함'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 접근 방식으로, 고령화 사회를 위한 포용적 기술, 즉 '제론테크(Gerontechnology)'의 발전 방향을 보여주는 사례다.
'드림팀'이 나선다...KAIST·고려대·플루이즈의 핵심 역량
이번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 중 하나는 각 분야 최고 수준의 전문성을 갖춘 기관들의 협력이다. 이른바 '드림팀'으로 불리는 컨소시엄은 학술 연구부터 기술 상용화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역량을 확보했다.
△ KAIST: 국내 최고의 과학기술 연구기관으로서 AI 추론, 자율 에이전트, 대규모 언어 모델(LLM) 등 프로젝트의 근간이 되는 원천 기술 연구를 담당한다. 특히 이번 사업의 파트너인 ㈜플루이즈가 KAIST에서 창업한 스타트업이라는 점에서 긴밀한 기술 협력이 기대된다.
△ 고려대학교: AI 에이전트의 성능은 사용자의 말을 얼마나 정확하게 인식하는지에 달려있다. 고려대학교 음성·언어처리 연구실(SLP Lab)은 구글 홈, 삼성 빅스비 개발에 참여한 세계적 수준의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어, 어르신들의 다양한 발음, 사투리, 말의 속도 등을 정밀하게 인식하는 특화된 음성인식 기술을 제공할 핵심 파트너다.
△ ㈜플루이즈: KAIST 창업기업인 플루이즈는 이미 자체 AI 에이전트 기술(FluidGPT)을 개발해 CES 혁신상을 수상하고, 모바일 컴퓨팅 분야 최고 권위 학회(ACM MobiCom)에 논문을 발표하는 등 기술력을 입증받았다. 이들의 참여는 이번 프로젝트가 단순 연구에 그치지 않고 실제 시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로 완성될 가능성을 높여준다.
이러한 컨소시엄 구성은 유망한 학술 연구가 상용화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사장되는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설계로 풀이된다. 정부(서울AI재단)가 사회적 목표와 자금을 제공하고, 대학(KAIST, 고려대)이 원천 기술과 특화 기술을 연구하며, 스타트업(플루이즈)이 이를 제품으로 구현하는 유기적인 협력 생태계를 구축한 것이다. 이는 국가 R&D 정책이 나아가야 할 성숙한 모델을 제시한다.
기술과 정책의 만남: '약자동행'과 '디지털포용법'의 구체적 실현
이번 AI 에이전트 개발 사업은 단발성 기술 프로젝트가 아니라, 서울시와 중앙정부의 정책적 비전과 법적 기반 위에서 추진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우선, 이 사업은 서울시의 핵심 정책 기조인 '약자와의 동행'을 실현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약자동행지수'라는 구체적인 평가지표까지 마련해 추진 중인 이 정책은 생계, 주거,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AI 에이전트는 이 중 '디지털취약계층의 디지털기기 활용 역량 수준' 지표를 직접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 수단이다.
또한, 프로젝트의 출범은 최근 국회를 통과한 'AI 기본법'과 '디지털포용법'과 시기적으로 맞물려 있다. 'AI 기본법'이 AI 산업 육성과 신뢰 기반 조성을 위한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면, '디지털포용법'은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격차를 해소하고 모든 국민이 차별 없이 혜택을 누리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서울시의 AI 에이전트는 이 두 법안의 입법 취지를 가장 충실하게 구현하는 첫 번째 주요 사업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프로젝트는 두 가지 정치적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서울시 입장에서는 '약자동행'이라는 시정 철학을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첨단 기술 서비스로 증명하는 가시적인 성과가 된다. 동시에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새로운 국가 법률의 원칙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선도 사례가 될 것이다. 앞으로 3년간 이 프로젝트가 개인정보, 윤리 등의 난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는 향후 관련 법률의 시행령과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수밖에 없다.
혁신의 그늘: 개인정보 보호와 AI 윤리의 과제
장밋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AI 에이전트 기술이 상용화되기까지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바로 개인정보 보호와 AI 윤리 문제다. 이 문제는 기술의 성공 여부를 떠나 사회적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AI 에이전트는 사용자를 대신해 여러 작업을 수행해야 하므로 스마트폰의 운영체제와 각종 앱에 깊숙이 접근할 권한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택시 호출을 위한 위치 정보, 병원 예약을 위한 건강 정보, 쇼핑을 위한 금융 정보 등 민감한 개인정보를 다루게 된다. 만약 이 정보가 유출되거나 오용될 경우 그 피해는 막대할 수밖에 없어, 철저한 보안 및 데이터 보호 체계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AI 개발 전 과정에서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이 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알고리즘의 편향성과 책임 소재 문제도 중요한 윤리적 과제다. 만약 AI가 특정 지역의 사투리나 고령층의 불분명한 발음을 제대로 학습하지 못한다면, 기술은 도움을 주려던 이들을 오히려 다시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또한 AI가 실수로 잘못된 예약을 하거나 원치 않는 물건을 주문했을 때, 그 책임이 사용자, 개발사, 혹은 서울시 중 누구에게 있는지 명확히 하는 것은 자율 시스템의 핵심적인 숙제다.
시민사회에서는 새로 제정된 'AI 기본법'이 이러한 위험을 통제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금지해야 할 위험 AI에 대한 규정이 없고, 사업자의 책무 위반에 대한 처벌이 미약하며, AI로 인해 피해를 본 시민을 구제할 실질적인 권리 보장 조항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결국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도전은 기술 개발 그 자체가 아니라, 아직 미성숙한 법 제도 환경 속에서 기술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의 문제가 될 것이다. 데이터 활용에 대한 투명한 설명, 쉬운 동의 절차, 그리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지원 체계 마련이 기술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요소다.
3년 후의 미래: 모두를 위한 AI 시대를 향한 전망
서울시의 AI 에이전트 프로젝트는 2025년 기술 개발, 2026년 시범 운영, 2027년 본격 확산이라는 3년간의 여정을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서울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 나아가 전 세계 도시들이 고령화 사회의 디지털 격차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모델이 될 수 있다.
김만기 서울AI재단 이사장은 "모든 시민이 디지털의 혜택을 고르게 누릴 수 있도록 기술 확산과 활용 기반 마련에 힘쓰겠다"며, 이번 사업을 서울시 '약자와의 동행' 정책을 실현하는 대표적인 AI 사업으로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결론적으로, 어르신을 위한 AI 에이전트는 우리 사회가 마주한 거대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AI라는 강력한 기술을 어떻게 하면 소외되는 사람 없이 모두의 삶을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어떻게 통제하고 윤리적 원칙을 지켜나갈 것인가. 앞으로 3년간 이 작은 AI가 걸어갈 길은 진정으로 인간을 중심에 두는 AI 시대를 여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한국정보기술신문 인공지능분과 이지원 기자 news@kitp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