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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 ·

텔레비전 탄생 100주년...영국 런던 소호에서 시작된 방송혁명

발행일
읽는 시간3분 17초

1926년 1월 26일 존 로기 베어드가 런던에서 최초 공개 시연, 현대 방송의 기틀 마련

[한국정보기술신문] 2026년 1월 26일은 텔레비전이 세상에 처음 공개된 지 정확히 100년이 되는 날이다. 1926년 1월 26일, 스코틀랜드 출신의 발명가 존 로기 베어드는 런던 소호의 프리스 스트리트 22번지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언론인들과 왕립학회 관계자들에게 텔레비전 시연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날의 시연은 현대 방송 산업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 순간으로 기록되고 있다.

베어드는 헬렌스버그 출신의 전직 엔지니어링 견습생으로, 건강 문제로 제1차 세계대전 징집이 거부되자 클라이드 밸리 전력회사에서 군수품 제조에 참여했다. 1923년 건강을 위해 영국 남부 해안 지역인 헤이스팅스로 이주한 그는 린튼 크레센트 21번지에서 텔레비전 송신 장비를 최초로 제작했다. 이 초기 장비는 모자 상자, 차 상자, 바느질 바늘, 자전거 전조등 렌즈 등 일상 용품으로 구성되었으며, 첫 송신 이미지는 세인트 존스 앰뷸런스 메달의 그림자였다. 그러나 1000볼트 전기 충격 사고로 손에 화상을 입은 후, 집주인의 요청으로 집을 떠나야 했다.

런던 진출과 초기 성공

베어드는 1924년 11월 런던으로 이주하여 프리스 스트리트 22번지 다락방에 작업실을 설치했다. 그의 발명에 관심을 보인 백화점 왕 고든 셀프리지는 베어드를 초대하여 생일주간 행사 기간 동안 팜 코트에서 시연회를 열도록 했다. 베어드는 하루에 세 차례 시연을 진행하며 관객들에게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전송된 형태의 윤곽을 깔때기를 통해 보여주었다. 이 시연으로 60파운드의 수입을 얻어 사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1925년 10월까지 베어드는 명암을 구분하는 이미지를 전송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을 발전시켰다. 초기에는 사람 얼굴보다 대비가 강하고 강렬한 열과 유리 파편으로부터 안전한 복화술 인형 스투키 빌을 사용했다. 이후 20세의 사무직 직원 윌리엄 테인턴을 2실링 6펜스의 출연료를 주고 설득하여 텔레비전 최초의 인간 피험자로 삼았다. 베어드는 당시 뜨거운 램프 앞에 앉아 혀를 내민 윌리엄을 보고 "윌리엄, 당신을 봤어요. 드디어 텔레비전을 완성했습니다"라고 외쳤다.

역사적 순간과 냉담한 반응

1926년 1월 26일 언론인들과 왕립학회 관계자들이 소규모로 베어드의 작업실을 방문하여 최초의 공식 시연을 관람했다. 참석자들은 먼저 화면에서 인형을 본 후, 별도의 방에서 전송된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다. 한 방문객이 회전하는 디스크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 수염이 잘리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큰 감명을 받지 못했고 이 발명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타임스지는 이틀 후인 1월 28일 짧은 기사를 통해 이 시연을 보도했다.

당시 베어드의 텔레비저는 여전히 전기기계식이었으며, 이중 렌즈와 직사각형 구멍이 뚫린 회전 디스크를 통해 이미지를 형성했다. 타임스지의 기사는 이 장치가 광감지 셀을 통해 이미지를 고속으로 전송하고, 수신기에서 빛의 점이 유리 스크린을 가로지르며 전체 이미지를 동시에 나타내는 방식을 설명했다.

이후 발전과 경쟁 패배

베어드는 계속해서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했다. 1927년에는 78rpm 축음기 레코드에 이미지를 녹음하는 포노비전과 적외선 텔레비전인 녹토비전을 발명했다. 1928년에는 놀랍게도 컬러 텔레비전과 입체 3D 텔레비전을 모두 시연했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BBC를 통한 텔레비전 방송이었으며, 1930년에 30라인 텔레비전 실험 방송을 시작했고 1931년에는 더비 경마의 최초 야외 중계를 실시했다.

그러나 1932년 EMI가 에미트론이라는 전자식 텔레비전 카메라를 개발하면서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했다. 정부의 텔레비전 자문위원회는 베어드의 240라인 기계식 시스템과 마르코니-EMI의 405라인 전자식 시스템을 모두 개발하도록 권고했다. 1936년 11월 2일 알렉산드라 팰리스에서 방송 텔레비전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두 시스템이 매주 교대로 사용되었으며, 베어드의 시스템이 두 번째로 방송되었다.

곧 마르코니 시스템이 훨씬 우수하다는 것이 명확해졌고 베어드의 시스템은 단 3개월 만에 중단되었다. 베어드는 크리스탈 팰리스를 파괴한 화재로 스튜디오를 잃었고, 제2차 세계대전 개시로 모든 텔레비전 방송이 중단되면서 그의 회사는 파산했다. 그는 시드넘의 자택에서 컬러 텔레비전 시스템을 대폭 개선하는 발명을 계속했으나, 작업실이 폭격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건강이 악화된 베어드는 1946년 BBC가 텔레비전 방송을 재개한 지 1주일 후 뇌졸중으로 5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현재의 기념지

현재 프리스 스트리트 22번지는 1949년부터 폴레드리 가문이 운영하는 레트로 카페 바 이탈리아가 자리하고 있다. 삼촌 토리노가 깔은 테라초 모자이크 석재 바닥과 런던 최초의 가지아 머신이 설치된 카운터를 갖춘 이 카페는 한때 스쿠터를 탄 모드족의 명소였으며, 록키 마르치아노를 비롯한 유명인사들이 방문했다. 이곳에는 전기기술자협회가 설치한 세계 최초 실시간 텔레비전 공개 시연을 기념하는 마일스톤 플라크와 공인 세계 기원지 0037번으로 지정된 새로운 플라크가 설치되어 있다.

베어드는 선구자로서 초기 텔레비전 성공 이후 경쟁에서 밀려나고 사업에 실패했지만, 20세기의 핵심적인 변혁적 발명을 가능하게 만든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스투키 빌에서 BBC 텔레비전 개막의 밤까지 10년이 걸렸고, 영국 가정에 텔레비전 세트가 널리 보급되기까지 20년이 더 걸렸으며, 컬러 텔레비전이 정착하기까지 또 20년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100년이 지난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이 가정에 텔레비전을 보유하고 주머니 속에 또 하나의 텔레비전을 가지고 있으며, 이 모든 것은 한 스코틀랜드인이 런던에 와서 영리하게 디스크를 회전시킨 덕분이다.

한국정보기술신문 방송통신분과 홍재진 기자 news@kitp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