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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마샛(Inmarsat), '우주 전화선'이 여는 초연결 시대
[한국정보기술신문] 휴대전화 신호가 끊기는 망망대해 한가운데서도, 선원이 버튼 하나만 누르면 구조 요청이 곧장 육지에 전달된다. 이 보이지 않는 다리를 놓는 주인공이 영국 위성통신 기업 인마샛(Inmarsat)이다. 1979년 '선박 안전 통신'이라는 단일한 목표로 출발했지만, 오늘날에는 항공기 기내 Wi-Fi부터 사막 탐사대의 휴대용 인터넷, 드론 원격조정까지 책임지는 글로벌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1979년 국제해사기구(IMO) 후원 아래 설립된 인마샛은 처음부터 "모바일 환경에서 안전을 보장하는 위성망"을 지향했다. 이후 45년 동안 서비스 영역은 해상·항공·정부·기업·사물인터넷(IoT)으로 확장됐고, 현재 '인마샛 마리타임' 등 4개 사업부가 세계 각지 고객을 지원한다.
인마샛 위성은 지상 35,786 km 정지궤도를 돌며 L-·Ka-밴드 전파를 주고받아 "99.9 % 글로벌 커버리지"를 제공한다. 덕분에 노트북만 한 단말기를 펼치면 북극·남극을 제외한 지구 어디서든 음성·데이터 통신이 가능하다.
일반 셀룰러 기지국이 반경 수십 km에 불과한 데 비해, 정지궤도 위성 한 대의 '발자국'은 지표면의 3분의 1에 달한다. 그야말로 "우주에 떠 있는 전화 교환기"가 단 한 번의 연결로 수백만 ㎢의 사각지대를 지운다. Inmarsat Corporate Website
우주 전화선의 작동 원리
인마샛은 현재 14기의 정지궤도 위성으로 L-밴드 'ELERA'(저속‧고신뢰)와 Ka-밴드 'Global Xpress(GX)'(고속)라는 두 층위 네트워크를 운용한다. 이 조합은 문자·음성·저속 데이터부터 50 Mbps 이상 브로드밴드까지 서비스를 아우른다.
비가 내려도 감쇠가 거의 없는 L-밴드와 고속을 자랑하지만 날씨 영향을 받는 Ka-밴드를 '핫스와프' 구조로 묶어, 선박·항공·육상 단말이 자동으로 최적 대역을 골라 끊김 없는 통신을 이어 간다.
위성에서 내려온 신호는 전 세계 24개 랜드 얼스 스테이션으로 수집돼 인마샛 백본망을 통해 인터넷, 전화, 사설 VPN으로 라우팅된다.
그 결과 북위·남위 82° 이내라면 남태평양 요트도, 히말라야 고산 캠프도 동일한 번호로 전화를 걸고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다.
바다에서 시작된 미션
인마샛의 기원은 해양 안전이다. 1979년 '국제 해상 위성 기구(INMARSAT) 협약'으로 탄생한 이 조직은 전 세계 선박의 조난·안전 통신을 책임지는 위성체계를 구축했다.
1992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된 GMDSS(세계 해상 조난·안전 시스템)의 핵심 구성요소가 바로 인마샛 C·Fleet Safety 단말이다. 국제 규정에 따라 대부분 상선이 의무적으로 탑재한다.
1999년 민영화로 사업 부문은 인마샛 주식회사로, 규제·감독 기능은 IMSO로 분리됐다. 이는 위성기구 최초의 민·관 이원화 모델로 평가받는다. 위키백과
공익 역할은 지속돼 2014년 말레이시아항공 MH370 실종 당시 위성 '핑' 데이터를 해석, 항로 추적의 열쇠를 제공하면서 국제 수색 활동을 지원했다.
서비스 포트폴리오의 진화
육상 휴대 단말 BGAN은 노트북 크기로 초당 492 kbps 인터넷과 음성 통화를 제공해 재난 대응팀·언론 특파원의 필수품이 됐다.
선박용 FleetBroadband는 전자해도, 기상 데이터, 선박 센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송하며 10여 년간 상선 통신의 표준 솔루션으로 자리 잡았다.
항공 부문 Jet ConneX는 기내에서 수백 Mbps급 Wi-Fi를 제공해 비즈니스 제트와 국제선 프리미엄 좌석에 도입되고 있다.
2015년 상용화된 Global Xpress(GX)는 인마샛이 직접 보유·운용하는 Ka-밴드 고속망으로, 특히 정부·방산 고객에게 안정적 고속 통신을 공급한다.
차세대 위성 아키텍처
2021·2023년 발사된 I-6 F1·I-6 F2 위성은 세계 최초로 L·Ka 밴드 듀얼 페이로드를 탑재해 두 네트워크 용량을 동시에 확장한다.
인마샛은 'ORCHESTRA' 프로젝트에 1억 달러를 투자, 최소 150기 저궤도(LEO) 소형 위성과 지상 5G 중계망을 결합한 멀티궤도 네트워크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 하이브리드 구조가 완성되면 별도 안테나 없이 스마트폰이 위성과 직접 통신하는 D2D(Direct-to-Device) 서비스도 가능해진다. SpaceNews
해운업계는 이 네트워크로 탄소 최적 항로 계산, 선원 복지 스트리밍, 원격 점검 등 디지털·탈탄소 전환을 가속하고 있다.
인수합병으로 보는 산업 지형
2023년 5월, 미국 위성통신사 비아샛(Viasat)은 현금·주식 73억 달러에 인마샛을 인수, 세계 3대 위성사업자로 부상했다.
영국 경쟁시장청(CMA), EU, 미국 FCC 등 규제 당국은 '경쟁 촉진과 영국 우주산업 투자 유지' 조건으로 이 거래를 승인했다.
비아샛은 중궤도 고용량 위성과 인마샛의 L·Ka 정지궤도망, 지상 5G 자산을 결합해 "궤도·주파수·시장 3중 시너지"를 노린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합병 이후 해상 부문은 'Inmarsat Maritime, a Viasat Company' 브랜드를 유지해 고객·규제 기관의 연속성을 보장한다.
향후 도전과 기회
저궤도 수천 기 위성으로 지연 시간을 줄인 스타링크·원웹의 공세 속에, 인마샛·비아샛 연합도 가격·지연 시간 경쟁에 직면해 있다.
비아샛은 2025 회계연도 매출이 '정체 수준'일 것이라며, 미국 고정 브로드밴드 대신 정부·모빌리티 시장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저궤도 소형 위성 150기 추가 발사를 위해서는 우주 교통 관리·궤적 충돌·우주 쓰레기 규제가 한층 엄격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반면 3GPP 표준 5G-NTN(비지상망)이 상용화되면 지상 기지국이 없는 지역에서도 스마트폰 로밍이 가능해져 인마샛의 하이브리드 전략은 새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다.
실제로 유럽 일부 항공사는 GX 기반 기내 Wi-Fi를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했고, 일본 K-LINE 선단은 '넥서스웨이브(NexusWave)' 해상 고속망 시범 운항에 돌입했다.
전파가 닿지 않는 곳을 연결하겠다는 45년 전 구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인마샛의 다음 과제는 "Connectivity Everywhere for Everyone"이라는 슬로건을 우주·바다·하늘·지상 모든 현실로 완성하는 일이다.
한국정보기술신문 정보통신분과 송유찬 기자 news@kitp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