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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지스터 진정한 발명가는 릴리엔펠트... 1925년 특허 출원으로 100주년 맞아

발행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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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연구소 노벨상 수상 논란, 독일 교수의 선행 특허 미인용 드러나

2025년, 트랜지스터 발명 100주년을 맞아 진정한 발명가가 재조명되고 있다.

[한국정보기술신문] 현대 디지털 문명의 핵심 부품인 트랜지스터의 진정한 발명가가 벨연구소가 아닌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의 율리우스 에드가 릴리엔펠트 교수였다는 사실이 재조명되고 있다. 2025년 10월 22일은 릴리엔펠트가 전계효과 트랜지스터 특허를 출원한 지 정확히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스위스 IDSIA의 위르겐 슈미트후버 교수가 최근 발표한 기술보고서에 따르면, 1925년 10월 22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출신의 폴란드 물리학자 릴리엔펠트는 캐나다에서 전계효과 트랜지스터에 대한 특허를 최초로 출원했다. 이후 1928년에는 금속 산화물 반도체 전계효과 트랜지스터, 즉 MOSFET에 대한 특허도 출원했다. 오늘날 전 세계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탑재된 수십억 개의 트랜지스터 대부분이 바로 이 릴리엔펠트 방식의 FET 타입이다.

벨연구소의 특허 분쟁과 노벨상 논란

릴리엔펠트의 선행 특허에도 불구하고, 1948년 벨연구소의 윌리엄 쇼클리, 존 바딘, 월터 브래튼이 점접촉 트랜지스터를 발명해 195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미국 물리학자 로버트 아른스가 1998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쇼클리와 제럴드 피어슨은 릴리엔펠트의 특허에 기술된 전계효과를 실험적으로 확인했음에도 이를 논문에서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1948년 11월, 벨연구소의 여러 특허 출원은 릴리엔펠트와 독일 엔지니어 오스카 하일의 훨씬 이전 설계와 너무 유사하다는 이유로 거부되었다. 아른스 교수는 1964년 벨연구소의 J.B. 존슨이 릴리엔펠트의 FET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이 진술이 의도적으로 오해를 유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1991년 브렛 크로포드의 논문과 1995년 조엘 로스의 실험은 릴리엔펠트의 설계가 실제로 작동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로스는 릴리엔펠트의 특허 설명서대로 소자를 제작했으며, 이 장치는 수개월간 안정적으로 작동했다. 1981년 반도체 물리학자 H.E. 스톡맨은 릴리엔펠트가 자신의 획기적인 진공관 없는 라디오 수신기를 여러 차례 시연했다고 확인했다.

뒤늦은 인정과 역사적 재평가

노벨상 수상자 중 한 명인 바딘은 1988년에야 릴리엔펠트가 반도체에서 전류 흐름을 제어해 증폭 장치를 만드는 기본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인정했다. 그는 또한 자신의 점접촉 트랜지스터가 이후 상업적으로 훨씬 유용한 것으로 입증된 접합 및 전계효과 트랜지스터로부터 반도체 프로그램을 전환시켜 트랜지스터 분야의 발전을 늦췄을 수 있다고 시인했다.

실제로 벨연구소의 1948년 점접촉 트랜지스터는 결코 실용적이지 못했으며 단순한 우회로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릴리엔펠트의 FET 설계는 1960년 벨연구소의 이집트 엔지니어 모하메드 아탈라와 한국 엔지니어 강다운이 특허를 받은 MOSFET 변형을 통해 현대 컴퓨터의 핵심 기술로 자리잡았다.

통합회로의 발전과 미래 전망

트랜지스터 발명 이후, 컴퓨터는 하나의 마이크로칩에 많은 트랜지스터를 모은 집적회로를 통해 훨씬 빠르게 발전했다. 1949년 독일 지멘스의 엔지니어 베르너 야코비가 공통 기판 위에 여러 트랜지스터를 탑재한 최초의 집적회로 반도체 특허를 출원했다. 1958년 미국 엔지니어 잭 킬비가 외부 와이어를 사용한 집적회로를 시연했고, 1959년 로버트 노이스가 모놀리식 집적회로를 발표했다.

2025년 현재 집적회로와 GPU는 수천억 개의 트랜지스터를 포함할 수 있으며, 그 대부분이 릴리엔펠트의 1925년 FET 타입이다. 1941년 콘라드 추제의 Z3 범용 프로그램 제어 컴퓨터가 초당 약 1개의 기본 연산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해, 2025년 현재 현대 컴퓨터는 같은 가격으로 초당 약 100조의 명령을 실행할 수 있다.

슈미트후버 교수는 보고서에서 릴리엔펠트가 트랜지스터의 발명가라는 점에 더 이상 합리적인 의심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이번 노벨상 선정 과정이 중대한 오류였으며, 이것이 마지막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슈미트후버 교수는 2024년 노벨 물리학상도 표절에 대한 상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릴리엔펠트는 1882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렘베르크에서 태어나 1905년부터 1926년까지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렘베르크가 폴란드에 귀속되면서 법적으로 폴란드인이 되었으며, 1934년 미국 시민권도 취득했다. 그의 트랜지스터 특허는 1925년부터 1928년 사이에 출원되었다.

이번 100주년을 계기로 과학사의 중요한 순간이 재조명되면서, 진정한 발명가에게 마땅한 인정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릴리엔펠트의 업적은 현대 디지털 문명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그의 FET 설계는 앞으로도 수십 년간 컴퓨팅 기술의 핵심으로 남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정보기술신문 정보통신분과 문창우 기자 news@kitp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