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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였다가 살렸다가’… 적응형 난이도가 바꾸는 플레이 체험

발행일
읽는 시간4분 7초

[한국정보기술신문] 게임을 하다 보면 갑자기 적이 약해지거나 체력 아이템이 쏟아질 때가 있다. 눈치 빠른 플레이어는 “AI가 실력에 맞춰 난이도를 조정했구나”라고 직감한다.

이처럼 시스템이 실시간으로 도전 강도를 바꾸는 기법을 ‘적응형 난이도(Adaptive Difficulty, DDA)’라고 부른다. 초보자는 좌절을 줄이고, 고수는 지루함 없이 몰입을 유지한다.

핵심 아이디어는 ‘플레이어 상태 → 게임 피드백 → 다음 상황 재조정’으로 이어지는 폐루프(feedback loop)다. AI가 점수, 피해량, 플레이 시간 등을 지표로 삼아 도전을 가감한다.

이 방식을 처음 정리한 논문은 2005년 로빈 허니키의 ‘The Case for Dynamic Difficulty Adjustment’다. 허니키는 “플로(Flow) 곡선을 유지해야 최적 즐거움이 나온다”고 주장했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AAA 게임이 해당 개념을 품기 시작했고, 2010년대 모바일·인디 플랫폼까지 번지며 사실상 ‘표준 UX’로 자리 잡았다.

‘플로’ 이론에서 AI 메트릭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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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이 칙센트미하이, Claremont Graduate University 제공

헝가리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플로’ 이론은 난이도 설계의 출발점이다. 숙련도와 도전이 균형을 이루면 몰입도가 최대로 솟구친다는 개념이다.

허니키 논문은 이를 게임에 적용해 “시스템이 플레이어 능력을 실시간 추적해 플로 존에 머물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UX 전문가 니콜 라자로도 “재미는 과제·보상 밸런스에서 나온다”며 ‘4가지 재미 모델(하드·이지·사교·서술)’에서 난이도 매핑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늘날 AI 난이도는 ‘행동 메트릭(피해량·헤드샷률)’ ‘리소스 메트릭(탄약·HP)’ ‘심리 메트릭(하트비트·시선 추적)’을 함께 읽는다. 연구용 프로토타입은 EEG 뇌파까지 입력값으로 사용한다.

시스템은 이렇게 모은 데이터를 가중치 모델에 넣어 “힘 조절값(스케일 팩터)”을 산출하고, 적 체력·숫자 조정, 드롭률 조절, 보스 패턴 변화 같은 식으로 반영한다.

딥러닝도 실험 중이다. 2023년 발표된 강화학습 기반 프레임워크는, 플레이어 사망 간격이 길어지면 난이도를 높이고 반대면 낮추는 정책으로 승률 85%에서 ‘체류’하도록 훈련됐다.

상용 타이틀의 DDA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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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하자드4, 닌텐도 제공

레지던트 이블 4(2005) 는 ‘DA(난이도 조절) 레벨’ 시스템으로 유명하다. 플레이어가 잘하면 레벨이 최대 11까지 올라 적 HP와 숫자가 증가하고, 허둥대면 레벨이 1까지 떨어진다.

레프트 4 데드(2008) 의 ‘AI 디렉터’는 플레이어 팀의 긴장 지수를 실시간 계산해 좀비 떼 크기와 출현 간격을 조절한다. ‘압도 후 휴식’ 리듬을 자동 생성해 매판 각본 없는 드라마를 만든다.

마리오 카트 시리즈의 ‘고무줄 AI’도 논외로 둘 수 없다. 뒤처지는 플레이어 근처에 더 강력한 아이템을 떨궈 레이스를 끝까지 접전으로 만든다. “불공정”이라는 비판과 “파티게임 재미”가 맞서는 대표 사례다.

레이싱 게임 포르자 호라이즌 시리즈는 머신러닝으로 플레이어 주행 패턴을 학습한 ‘Drivatar’ 유령차를 생성해 친구 기록을 대체한다. 이는 멀티·싱글 경계를 허문 적응형 경쟁 구조다.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2022)는 70개 이상의 접근성 옵션을 제공하며 난이도를 ‘보스 공격 텔레그래프’ ‘방어 판정’ 등 세부 파라미터로 쪼갠다. 사용자는 “전투는 쉬움, 퍼즐은 어려움” 같은 개인화가 가능하다.

인디 로그라이크 데드 셀 은 플레이 로그를 학습해 무기 드롭표와 스테이지 변형을 바꾼다. “같은 맵이 없다”는 사용자 평 뒤에는 DDA 스크립트가 숨쉬고 있다.

AI 디렉터 기술의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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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트 4 데드 로고, Valve Software 제공

‘AI 디렉터’ 계열 알고리즘은 주로 세 단계를 밟는다. (1) 정책 모듈이 난이도 인자를 계산, (2) 오케스트레이션 모듈이 레벨 디자인 요소를 호출, (3) 로깅·학습 모듈이 결과를 축적한다.

레프트 4 데드 디렉터는 Intensity 스코어를 0~100으로 관리한다. 좀비 공격마다 상승, 휴식 때 하락하고, 80 이상이면 특수 좀비 스폰을 중단해 팀을 숨 돌리게 만든다.

EA 스튜디오 일부 팀은 ‘오디오 디렉터’를 별도로 둬 긴장도에 따라 음향 볼륨·템포를 바꿔 시청각 일체감을 제공한다.

최근 Unity·Unreal은 플러그인 형태의 ‘난이도 모듈’을 제공한다. 개발자는 스크립트 한 줄로 HP·스폰율 등 변수 바인딩만 하면 즉석에서 DDA 딥러닝을 테스트할 수 있다.

엘더스크롤 모드를 만드는 커뮤니티는 오픈소스 ‘SkyTweak’에 난이도 곡선 편집기를 붙여 보스 레벨업 속도를 사용자 슬라이더로 조정 가능하게 했다.

이처럼 핵심은 ‘플레이 메트릭 → 파라미터 매핑 → 즉시 반영’ 세 단계를 얼마나 매끄럽게 잇느냐다. 스튜디오 규모와 무관하게, 좋은 툴체인만 있으면 인디도 AAA급 DDA를 구현할 수 있다.

윤리·비즈니스 쟁점

DDA는 ‘사용자 몰입’을 높이지만 “조작받는다”는 반감을 부를 수 있다. 마리오 카트 고무줄 AI가 대표적이다. 실력 기반 경쟁인가, 재미 위한 기만인가를 두고 커뮤니티 논란이 뜨겁다.

멀티플레이 PvP에서는 더 민감하다. ELO 등급제로 공정성을 확보해도, 서버 쪽 난이도 스크립트가 불투명하면 ‘스텔스 너프’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수익 모델과 얽히면 문제는 심화된다. 모바일 일부 게임은 ‘결제 직후 승률 하향 보정’ 같은 도박형 디자인이 발견돼 비판받았다. 플레이어가 계속 지갑을 열도록 심리적 압박을 조정한 셈이다.

프라이버시도 이슈다. 시선 추적·뇌파 데이터까지 쓰는 연구가 늘면서, “엔터테인먼트 목적에 맞게 최소 수집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규제 측면에서 EU 디지털서비스법(DSA)은 ‘알고리즘 투명성’을 플랫폼 의무로 부과했다. 게임도 플레이 로그 기반 난이도 조정이 사용자에게 미칠 영향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난이도 조절 알고리즘 설명 서머리(Explainable AI)를 옵션 메뉴에 두라”는 권고안을 내놓고 있다. 사용자가 스스로 투명성을 조절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미래를 여는 기술과 연구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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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허니키의 The case for dynamic difficulty adjustment in games 논문, researchgate.net 캡처

머신러닝이 고도화되면서, 실시간 강화학습·메타러닝이 ‘플레이어 전담 AI 트레이너’처럼 진화할 가능성이 크다. 게임이 알아서 튜토리얼을 완수하고, 최적 난이도를 개별 추론하는 시대가 머지않았다.

클라우드 세이브·게임패스 환경에서는 플랫폼 차원에서 난이도를 교차 학습할 수 있다. 플레이어가 다른 기기·다른 게임으로 넘어가도 실력 프로필이 따라다니는 ‘글로벌 DDA’가 현실적인 시나리오다.

하지만 “과도한 맞춤은 판에 박힌 경험을 낳을 수 있다”는 역설도 있다. 연구자들은 ‘의도된 불균형(Deliberate Challenge)’을 일정 비율 유지해야 장기 재미가 높다는 데이터를 내놓았다.

또 다른 과제는 레벨 디자이너의 역할 재정의다. 알고리즘이 맵·적 스폰을 자동 편성하면, 디자이너는 ‘경험 감독(Experience Director)’에 더 가까운 직무로 전환될 전망이다.

마지막으로, DDA 모델 검증용 ‘표준 플레이 로그 데이터세트’가 필요하다. 학계·산업계가 공동으로 벤치마크를 만들면 연구 속도와 재현성이 동시에 높아질 수 있다.

결국 적응형 난이도는 “플레이어마다 다른 재미를 가져다주겠다”는 오랜 꿈을 현실로 옮기는 기술이다. 계산과 윤리라는 두 개의 스틱을 균형있게 돌릴 수 있을지가, 이후 게임 디자인 패러다임을 가를 중대한 승부처가 될 것이다.

한국정보기술신문 실감형콘텐츠분과 박성빈 기자 news@kitp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