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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화풍 보호’ 법제화, 창작의 권리인가 혁신의 걸림돌인가
[한국정보기술신문] 인공지능(AI) 모델은 수많은 예술 작품을 학습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이 과정에서 특정 화가의 ‘화풍(style)’을 흉내 내는 기능이 눈에 띄게 발전했다. AI가 고흐나 피카소처럼 독특한 붓 터치를 재현할 때, 과연 그 화풍에도 저작권을 부여해야 할까?
저작권법은 전통적으로 ‘저작물’에만 적용되며, 화풍 자체는 보호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AI 시대에 접어들면서 ‘스타일 도용’이 빈번해지자, 일부에서는 화풍 보호를 위한 별도 법제화를 주장한다. 저작권 보호의 범위가 그림 한 점을 넘어 스타일 전반으로 확장될 경우, 창작자 권리는 강화될까, 아니면 표현의 자유는 위축될까?
AI와 예술 스타일의 만남
AI 학습 데이터는 수백만 점의 미술 작품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스타일이 뚜렷한 작품을 학습해 생성 모델은 화가 특유의 색채·구도·질감을 재현할 수 있다.
예컨대, 오픈소스 Stable Diffusion과 같은 모델들은 ‘~풍’(예: 고흐풍, 모네풍) 프롬프트를 통해 스타일을 즉시 반영한다. 이는 예술가의 화풍이 사실상 ‘디지털 필터’로 상품화된 셈이다.
2023년 미국 저작권청은 “AI가 특정 작가의 화풍을 무단 활용할 경우, 원작자의 저작권(혹은 퍼블리시티 권리)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지”를 묻는 공청회를 열었다. 해당 공청회는 향후 법제화 방향을 모색하는 중요한 분기점으로 평가됐다.
이 자리에서 다수의 예술 단체가 “화풍은 예술가의 창의적 선택이 집약된 결과물”이라 주장했지만, 반면 “스타일 자체는 아이디어로서 보호가 어렵다”는 의견도 팽팽했다.
또한 2024년 말 발표된 저작권청 ‘제2부 보고서’에서는 “완전히 AI만으로 생성된 작품은 저작권 대상이 아니며, 일부 인간 기여(예: 구체적 프롬프트 작성)를 인정할 경우 스타일 모방 산출물의 보호 범위를 논의할 수 있다”고 결론 지었다.
화풍 보호의 필요성
첫째, 예술가의 ‘창작성’ 인정이다. 특정 스타일을 구축하기 위해 쌓아온 기법과 경험은 창작자의 지적 재산이며, 이를 무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불공정 경쟁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2022년 미국 법원에 제기된 소송 사례에서는 세 명의 작가가 자신들의 그림 스타일을 학습한 AI를 상대로 “화풍 도용”을 문제 삼았다. 이들은 AI 생성물이 원작의 독창적 표현을 불충분히 변형했다고 주장했다.
둘째, 시장 왜곡 방지다. AI 화풍 모방이 자유로우면, 마치 ‘표절’처럼 기성 작가의 수익이 감소할 우려가 있다. 특히 온라인 플랫폼에 무수히 쏟아지는 AI 작품이 원작보다 저렴한 가격에 거래된다면, 인간 예술가의 정당한 보상이 위협받는다.
셋째, 공정 이용(fair use)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판례와 규정만으로는 ‘스타일’과 ‘표현’의 경계가 불명확해, 창작자·AI 개발자 모두 법적 불확실성에 시달린다. 별도 법제화를 통해 스타일 모방에 대한 허용·금지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네 번째로, 예술가 커뮤니티의 요구도 크다. 한국화·수묵화 등 전통 화풍 보존 단체는 “전통 기법의 디지털 도용을 막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호소했다. 정부 차원의 보호 장치 없이 사적 분쟁 해결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창작 자유와 혁신 저해 우려
반대 측은 ‘표현의 자유’를 강조한다. 화풍은 아이디어의 영역이며, 아이디어 자체는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기에 스타일 보호는 법리에 맞지 않는다고 본다.
Yale Law Journal 기고문은 “스타일 보호가 확대되면, 예술 혁신이 위축되고 공동 창작 문화가 단절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AI 예술가·일반 사용자가 자유롭게 프롬프트를 실험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법적 집행의 난점도 크다. 화풍의 핵심 요소(색상, 붓질 패턴 등)를 객관적으로 추출해 침해 여부를 판정하는 기술적 기준을 마련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는 법정 다툼에서 혼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AI 발전 속도를 고려할 때, 과도한 규제가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AI 연구자들은 “신생 기업들이 스타일 허가를 얻기 위해 거대한 저작권 청사진을 검토해야 한다면 혁신이 저해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마지막으로, 기존 저작권법으로 충분히 대응 가능하다는 입장도 있다. 무단 복제나 1:1 카피는 현행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고, 스타일 모방의 경우 ‘시장 대체 효과(substantial similarity)’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법제화 동향과 해외 사례
미국에서는 2023년 저작권청 공청회 이후, 의회 상·하원에 AI 저작권 가이드라인 제정 논의가 본격화됐다. 그러나 구체적 법안은 아직 제출되지 않았고, 초안 연구가 진행 중이다.
유럽연합(EU)도 2024년 AI법 초안(Artificial Intelligence Act)에서 “고위험 AI 시스템의 투명성”을 다루면서 스타일 보호 논의를 포함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뒀다. 다만, 최종 법안에는 스타일 보호 조항이 빠졌다.
영국은 2024년 ‘데이터(이용 및 접근) 법안’ 수정안에서 AI 학습에 사용된 저작물 공개를 요구했으나, 스타일 보호 자체를 다루지는 않았다. 저작권은 여전히 인간 저작자 중심으로 해석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2024년 말 발표한 ‘AI·디지털 저작권 가이드라인’에서 “창작 보조 목적의 AI 사용은 공공 이익에 부합”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스타일 보호는 후속 검토 대상으로 미뤄졌다.
중화권 일부 학계는 ‘신탁형 저작권(contributory copyright)’ 개념을 제시해, AI 학습 데이터 제공자와 모델 개발자가 함께 저작권을 공유해야 한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그러나 법적 실효성은 입증되지 않았다.
결론과 과제
AI 화풍 보호 법제화 논쟁은 예술가의 권리 보호와 표현·기술 혁신 사이의 균형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았다. 스타일 보호를 위한 별도 법안이 도입될 경우, 법적 명확성과 집행 가능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
반면, 과도한 규제는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글로벌 경쟁력을 떨어뜨릴 위험이 크다. 창작자·개발자·정책 당국이 공동으로 사례 기반 연구를 진행해 실증적 근거를 축적해야 한다.
기술적 기준 마련을 위해서는 스타일의 핵심 요소를 객관화할 수 있는 메타데이터·AI 분석 도구 개발이 필수적이다. 국내 연구진과 민간 기업이 협업해 기준을 선제 제안할 수 있다.
법제화 전 단계로, ‘자율준수 원칙(self-regulation)’과 ‘표준계약 양식’을 도입해 기업·플랫폼이 스타일 보호 원칙을 자발적으로 수용하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있다.
궁극적으로 저작권법은 인간 창작자의 권리 보호라는 근본 취지를 유지하면서, AI 시대의 창작 생태계가 지속가능하도록 진화해야 한다. 스타일 보호 논의도 이 틀 안에서 이뤄질 필요가 있다.
2025년, AI 예술과 저작권의 경계선은 여전히 그려지는 중이다. 우리 사회가 어떤 균형점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미래 예술의 지형과 창작 생태계의 풍경이 결정될 것이다.
따라서 향후 정책 수립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반영해, ‘공정한 스타일 보호’와 ‘표현 자유 보장’이라는 두 목표를 조화롭게 달성해야 할 것이다.
한국정보기술신문 인공지능분과 김주호 기자 news@kitp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