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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달청, 상용SW 조달 판도 바꾼다…'진입장벽' 낮추고 '불공정 관행' 정조준
2025년 9월 1일 시행, 사회적 약자 기업 실적 면제·'끼워팔기' 금지 등 파격 조치. SW 업계, "숨통 트일 것" 환영 속…과도한 할인 경쟁·제재 실효성 우려도 교차
[한국정보기술신문] 조달청(청장 백승보)이 상용소프트웨어(SW)의 공공조달 시장 진입 문턱을 낮추고 공정 경쟁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계약 규정 개정안을 발표했다. 오는 2025년 9월 1일부터 시행될 이번 개정안은 다수공급자계약(MAS)과 제3자단가계약 제도를 동시에 손질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주요 변경 사항은 △신규 사회적 약자 기업에 대한 납품 실적 요건 면제 △기업의 행정 부담을 줄이기 위한 중간점검 주기 연장 △시장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된 '끼워팔기'식 무상 물품 제공 금지 및 처벌 강화 △영업 자율성 확대를 위한 할인 행사 횟수 대폭 확대 등이다. 이번 조치는 국내 SW 기업, 특히 자본과 실적이 부족한 중소·신생 기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성장 사다리'를 놓는 동시에, 대기업 중심의 불공정 관행을 근절하려는 정부의 '이중 전략(Dual-Pronged Strategy)'으로 풀이된다. 업계는 대체로 환영하면서도, 개정안이 시장에 미칠 실질적 효과와 잠재적 부작용에 대해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무엇이 어떻게 바뀌나: MAS·제3자단가계약 개정안 상세 분석
이번 개정안은 공공 SW 조달의 양대 축인 다수공급자계약(MAS)과 제3자단가계약 제도를 전방위적으로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기업의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여주는 조치부터 시장의 오랜 관행을 뿌리 뽑는 강력한 규제까지, 각 항목의 구체적인 내용과 그 의미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다수공급자계약(MAS): '진입'은 쉽게, '경쟁'은 공정하게
다수공급자계약(MAS)은 각 공공기관의 다양한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품질·성능이 비슷한 SW를 2인 이상과 계약하여 나라장터 쇼핑몰에 등록하는 제도다. 이번 개정의 핵심은 신규 기업의 진입 장벽을 허물고, 기존의 불공정한 경쟁 방식을 원천 차단하는 데 있다.
첫째, 신규 사회적 약자 기업에 대한 납품 실적 요건이 면제된다. 기존에는 공공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납품 실적이 필수적이었다. 이는 기술력은 있으나 실적이 없는 신생 기업에게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모순적인 진입 장벽으로 작용해왔다. 이번 조치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파격적인 조치다. 이는 단순히 사회적 약자 기업을 배려하는 차원을 넘어, 공공 조달 시장에 새로운 경쟁과 혁신을 불어넣으려는 정부의 전략적 판단이 깔려있다. 소수의 기존 업체가 과점하던 시장에 잠재력 있는 새로운 기업들을 '씨앗'처럼 심어, 시장 생태계 전체의 활력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이를 통해 공공 부문은 더 다양하고 혁신적인 SW 솔루션을 선택할 기회를 얻게 될 전망이다.
둘째, '끼워팔기'로 불리는 계약 외 물품의 무상 제공이 전면 금지되고, 위반 시 강력한 제재가 가해진다. 위반 시 적발 횟수에 따라 1개월 거래정지에서 최대 계약해지까지 처벌 수위가 명시됐다. 이는 이번 개정안에서 가장 강력한 공정 경쟁 확립 장치로 평가받는다. 과거 일부 대형 SW 기업들은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추가 라이선스, 고가의 교육 서비스, 심지어 하드웨어까지 무상으로 제공하며 사실상 가격 외적인 요소로 경쟁 우위를 점해왔다. 이는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이 조항은 공공 조달의 평가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지금까지는 '무료 증정품'을 포함한 '총 패키지 가치'가 구매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면, 앞으로는 계약된 SW 자체의 '핵심 제품 가치'를 중심으로 평가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조달 담당자가 부가적인 혜택에 현혹되지 않고, 오직 제품의 성능, 품질, 가격, 기술 지원 등 본질적인 요소만을 놓고 공정하게 비교하도록 유도한다. 결과적으로 기술력이 뛰어난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셈이며, 이는 납세자의 예산이 더 효율적으로 사용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외에도 기업의 행정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MAS 계약 중간점검 주기를 기존 1년에서 1년 6개월로 연장하는 실무적인 개선도 포함되었다.
제3자단가계약: '행정'은 간소화, '영업'은 자유롭게
중소 SW 개발업체를 지원하기 위해 수의계약 형태로 공공기관에 제품을 공급하는 제3자단가계약 역시 기업 친화적으로 개선된다. 핵심은 불필요한 서류 작업을 없애고, 기업의 자율적인 마케팅 활동을 보장하는 것이다.
먼저, 커스터마이징 및 유지관리 상품을 추가할 때 필수로 제출해야 했던 복잡한 가격 증빙 자료가 단순 견적서로 대체된다. 복잡한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은 신속한 대응이 생명인 중소기업에게 상당한 행정적, 시간적 비용을 유발했다. 이번 간소화 조치로 기업들은 변화하는 고객의 요구에 훨씬 빠르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 이는 특히 잦은 업데이트와 맞춤형 개발이 요구되는 SW 산업의 특성을 현실적으로 반영한 조치다.
또한, 기업의 영업 활동을 옥죄었던 할인 행사 횟수 제한이 대폭 완화된다. 기존 6년간 최대 7회로 묶여 있던 제한이 연간 3회까지(6년간 최대 18회)로 크게 늘어난다. 기존의 엄격한 규제는 시장 상황 변화에 따른 능동적인 마케팅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제 기업들은 분기별 프로모션, 정부 회계연도 마감에 맞춘 특별 할인, 신제품 출시 기념 행사 등 다양한 전략적 영업 활동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게 됐다.
다만, 이러한 자율성 확대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자칫 기업 간 '제 살 깎아먹기'식 출혈 경쟁을 유발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공기관의 예산 집행이 몰리는 연말 등에 여러 기업이 동시에 대규모 할인 경쟁에 돌입할 경우, 시장 전체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SW의 가치가 하락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늘어난 자율성만큼 성숙한 시장 경쟁 질서가 함께 요구되는 부분이다.
개정 배경과 정책 목표: '혁신 성장'과 '공정 경제' 동시 구현
이번 조달 규정 개정은 단순히 몇몇 조항을 수정하는 기술적인 차원을 넘어선다. 정부가 추진하는 더 큰 정책 목표와 맞물려 있는 전략적 행보다. 조달청 강신면 기술서비스국장은 "이번 개정은 기업들이 혁신과 품질경쟁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행정부담을 덜어주면서, 공정경쟁을 저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며 '부담 완화'와 '공정성 강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명확히 했다.
이러한 정책 방향은 현 정부의 핵심 국정 과제인 '디지털 플랫폼 정부' 구현과도 직결된다. 정부는 인공지능, 클라우드, 데이터 등 최신 기술을 활용해 대국민 서비스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자 한다. 이 거대한 디지털 전환을 성공시키려면 정부 스스로가 가장 혁신적인 SW를 신속하게 도입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기존의 조달 제도는 높은 진입 장벽과 불공정 경쟁 관행으로 인해 오히려 혁신의 발목을 잡는 걸림돌로 작용해왔다. 특정 기술에 강점을 가진 작고 민첩한 기업들이 실적이나 자금력 부족으로 공공 시장에 진입하지 못한다면, 정부는 결국 소수의 대형 업체가 제공하는 제한된 솔루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는 국가 전체의 디지털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번 조달 제도 개혁은 SW 기업을 돕는 것을 넘어, 정부의 디지털 전환 목표 달성을 위한 필수적인 선결 과제라 할 수 있다. 조달 시스템이라는 '파이프라인'을 정비하여, 민간의 혁신적인 기술이 공공 부문으로 원활하게 흘러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작업인 셈이다. 결국 이번 개정은 국내 SW 산업의 '혁신 성장'을 촉진하는 동시에, 시장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 '공정 경제'를 실현하려는 정부의 다층적 목표가 반영된 결과물이다.
시장 전망과 업계 반응: 기대감 속 신중론
이번 개정안 발표에 대해 SW 업계, 특히 중소·벤처기업들은 대체로 환영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한 중소 SW 기업 대표는 "기술력 하나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공정한 토대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며, "특히 납품 실적 면제는 이제 막 시작하는 스타트업에게는 가뭄의 단비와 같은 소식"이라고 평가했다. 할인 행사 확대와 서류 간소화 역시 시장 수요에 기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시장 전체의 역동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기대감 속에는 신중론도 교차한다. 가장 큰 우려는 '끼워팔기 금지' 조항의 실효성 문제다. 업계 관계자들은 무상 제공의 범위를 어떻게 명확히 정의하고,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구두 약속이나 컨설팅 지원 등 교묘한 우회 행위를 어떻게 적발할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조달청의 강력한 감독 의지와 집행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해당 조항이 선언적인 구호에 그치며 사문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한, 할인 행사 확대가 앞서 언급했듯 과도한 출혈 경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경계의 대상이다. 공공기관의 예산 소진을 노린 무분별한 가격 인하 경쟁은 단기적으로는 일부 기업에 이득이 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SW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업계 전체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기존 시장의 강자들이 새로운 규제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형태의 진입 장벽을 만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지속적인 시장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결론: 성공적 안착의 조건…'지속적 소통과 엄정한 집행'
조달청의 이번 상용SW 계약 규정 개정은 기업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당근'과 불공정 행위를 근절하는 '채찍'을 동시에 사용한 정교한 정책 설계로 평가할 수 있다. 기술력 있는 신생 기업에게는 기회의 문을 열어주고, 시장의 질서를 흐리는 관행에는 엄격한 책임을 묻겠다는 명확한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제도의 성공은 발표가 아닌 실행에 달려있다. 성공적인 시장 안착을 위해서는 2025년 9월 1일 시행 이후가 더욱 중요하다. 조달청은 △개정된 규정의 세부 사항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시장에 제공하고 △업계와의 지속적인 소통 채널을 유지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불공정 행위 감시 및 제재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집행하여, 규정이 '살아있는 원칙'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신뢰를 시장에 심어주는 것이다.
조달청이 밝힌 "국민과 기업 중심으로 제도를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는 약속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져, 국내 SW 산업 생태계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정보기술신문 정보기술분과 전호재 기자 news@kitp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