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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가 내건 ‘디지털 대전환’ 로드맵은 무엇인가
[한국정보기술신문] 6월 4일 새벽, 제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첫날부터 ‘AI·반도체·디지털 경제’를 국정 1순위로 내걸었다. 선거 기간 내내 “첨단 산업 없이는 국가 미래도 없다”는 구호를 강조해 온 만큼, 시장의 관심은 곧바로 IT 공약 이행 여부로 쏠렸다.
이 대통령 측 공약집에 따르면, 연구개발(R&D) 예산 비중을 국내총생산(GDP)의 5 %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2030년까지 ‘디지털 종합 수출 1 위 국가’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구체적 방법론으로는 인공지능(AI)·반도체·사이버보안·핀테크·플랫폼 산업 등 5대 핵심 분야에 대한 ‘핀셋 규제’와 대규모 투자 유치를 약속했다.
공약 발표 직후 ICT 업계는 “투자 확대는 환영하지만, 규제 완화·데이터 개방 같은 구조적 과제도 병행돼야 한다”는 신중론을 냈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성장 파트너’가 되느냐, ‘관리 감독자’가 되느냐에 따라 효과가 달라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치권은 지난 보수·진보 정권 모두가 디지털 전환을 추진했지만, 실행력 부족으로 정책이 반복·중복됐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번 정부가 ‘입법 공백’ 없이 곧장 임기를 시작한 만큼, 초기 6개월이 정책 성공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AI 대전환 청사진
가장 큰 화두는 ‘AI 3강(G3)’ 전략이다. 이 대통령은 미국·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3대 AI 강국 도약을 공언하며, 대통령 직속 ‘국가AI위원회’와 대통령실 ‘AI정책수석’ 신설을 약속했다.
초대 AI정책수석으로는 임문영 더불어민주당 디지털특위 위원장이 유력하다. 임 후보자는 경기도청 재직 시절 스마트시티·자율주행 테스트베드 구축을 주도한 경험이 있다.
정부 조직 개편안에 따르면, 국가AI위원회는 R&D·인재·윤리 3개 분과를 두고 민관 합동으로 연간 10조 원 규모의 AI 펀드를 운용한다. 투자금은 반도체 설계(팹리스), 초거대 모델, 의료·교육 등 AI 융합 산업으로 흘러간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AI 3강 펀드가 계획대로 조성될 경우, 2029년까지 직·간접 고용 유발 인원이 12만 명, 생산 유발 효과가 47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다만 야당은 “대규모 재정 투입이 성장 효율로 연결될지 검증이 부족하다”며 민간 투자 유치 비중을 높이도록 요구하고 있다. 전문가들 역시 ‘정부 주도’ 대신 ‘정부 촉진’ 모델로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통령실은 다음 달 ‘AI 윤리 기본법’ 초안을 공개할 예정이다. 개인정보·저작권 보호 장치를 강화해, 글로벌 AI 규제 경쟁 속에서 ‘신뢰 가능한 AI 허브’ 이미지를 구축하겠다는 복안이다.
K-반도체 승부수
선거 ‘1호 공약’은 반도체였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도 “차세대 시스템 반도체·소부장(소재‧부품‧장비) 생태계 육성으로 ‘2차 K-반도체 붐’을 일으키겠다”고 강조했다.
구체적 방안으로 ▲종합반도체특화단지 3곳 신규 조성 ▲R&D 세액공제율 확대(최대 40 %) ▲차세대 메모리·AI 칩 초격차 프로젝트 추진이 제시됐다.
법인세 감면·인허가 패스트트랙 제도도 포함됐다. 삼성·SK·DB하이텍 등 국내 팹과 글로벌 팹리스 협력사를 동시에 유치해 ‘반도체 클러스터 네트워크’를 만들겠다는 그림이다.
재계는 일단 긍정적이다. 다만 “신증설 부지·전력 인프라 확보, 환경 규제 완화가 병행되지 않으면 공약이 선언에 그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책은행(산은·수은)이 조성할 20조 원 규모 ‘K-반도체 성장 펀드’는 내년 상반기 첫 투자 대상을 선정한다. 대상은 로직·차량용·AI SoC 설계기업과 후공정(OSAT) 업체가 중심이 될 전망이다.
반도체 인력난 해소를 위해 학·연·기업 공동 교과과정과 ‘반도체고(高)’ 신설도 추진된다. 교육계는 “중장기적 해법이지만, 대학 정원 확대와 병행하지 않으면 효과가 제한적”이라며 단계별 로드맵을 촉구한다.
디지털 자산과 핀테크
가상자산 시장도 관심사다. 이 대통령은 ‘코인 ETF’ 허용,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가이드라인, 레귤러토리 샌드박스(규제 특례) 확대를 약속했다.
금융위원회는 ‘디지털자산 기본법’ 제정을 연내 목표로 잡았다. 핵심은 ▲거래소 실명제 강화를 통한 소비자 보호 ▲증권형 토큰(STO) 공모 규정 ▲탈중앙거래(DEX)의 자금세탁 방지 체계다.
국내 가상자산 업계는 “제도권 편입이 시장 투명성을 높일 것”이라며 ETF 허용 시 시가총액이 30 % 이상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 동시에 세부 규제 강도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핀테크 분야에선 ‘수수료 0 % QR결제 인프라’와 ‘마이데이터 2.0’이 공약에 포함됐다. AI 기반 신용평가 모델 개발 기업에는 3년간 법인세를 50 % 감면한다는 방안도 준비 중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디지털자산 시장 변동성이 큰 만큼 ETF·스테이블코인 허용은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3단계 시범 허가→조건부 허가→전면 허용 절차를 검토하고 있다.
블록체인 업계는 “제도권 편입이 해외 자본 유치로 이어질 것”이라며 긍정적 반응을 보인다. 다만 투자자 보호·감독 역량 강화가 선행돼야 정책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사이버보안과 플랫폼 규제
이재명 정부의 사이버보안 로드맵은 ‘민·관 협력’이 키워드다. 정부는 침해사고 대응 체계를 민간기업과 실시간 공유하고, 사고 발생 시 기업 책임을 강화하는 쌍방향 모델을 제시했다.
대통령 직속 ‘국가사이버안보위원회’는 공공·민간 통합 위협 인텔리전스(TI) 허브를 구축하고, AI 기반 보안 관제 시스템을 2027년까지 전 부처에 도입한다.
동시에 온라인플랫폼법 제정이 추진된다. 취임사에서 이 대통령은 “창의적·능동적 기업 활동을 보장하되, 지배적 플랫폼의 불공정 행위는 핀셋 규제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법안 초안은 ▲검색·배달·쇼핑 등 플랫폼의 정보 비대칭 해소 ▲자사 우대 금지 ▲데이터 이동권 보장 조항을 담고 있다. 업계는 “규제 강도에 따라 투자 위축이 우려된다”면서도 “예측 가능한 룰이면 수용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중소 스타트업 단체는 “시장 지배력 남용을 방지해 공정경쟁을 촉진할 것”이라며 법안 통과를 지지한다. 반면 일부 대형 플랫폼은 “과도한 사전 규제가 혁신 동력을 훼손한다”며 세부 조정안을 요구한다.
대통령실은 7월 임시국회에서 온라인플랫폼법을 우선 처리한 뒤, 2026년까지 단계별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계획이다.
IT 인프라·R&D 투자 확대
정부는 클라우드·데이터센터(DX) 투자 세액공제율을 최대 30 %로 상향하고, ‘AI 전용 데이터 댐 2.0’을 구축해 고품질 학습 데이터를 민간에 개방할 예정이다.
5G‧6G 전국망은 2029년 100 % 보급을 목표로 한다. 지방 중소 도시에도 ‘디지털 혁신 특구’를 지정해 데이터센터와 스타트업 캠퍼스를 동시에 조성한다.
R&D 예산은 내년 32조 원, 2028년 45조 원까지 단계적으로 늘린다. 투자 대상은 AI 반도체, 퀀텀 컴퓨팅, 배터리·수소 등 미래 먹거리 산업이다.
이 가운데 공공 클라우드 전환률을 ‘5년 내 70 %’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 가장 현실적 과제로 꼽힌다. 공공기관의 레거시 시스템 교체 비용과 보안 이슈가 관건이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클라우드 전환으로 연 1조 원 이상의 운영비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며 “보안 인증·국산 클라우드 우선 사용 조건을 통합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과방위는 “R&D 투자 증액은 바람직하지만, 부처별 중복 지원과 집행율을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과제와 전망
전문가들은 이재명 정부 IT·산업 공약의 공통 키워드를 ‘투자 확대, 규제 혁신, 민관 협치’로 압축한다. 큰 방향은 긍정적이지만, 재정 부담·국회 입법 지연·글로벌 공급망 변수 등 복합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야당은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가 있는 만큼 민간 자본을 최대한 끌어내고, 규제 완화 과제를 선행해야 한다”는 조건부 지지 입장을 밝혔다.
업계는 초기 1년을 ‘골든 타임’으로 본다. “정책 구체화 속도가 향후 5년의 산업 생태계를 좌우한다”는 이유다. IT 기업들은 인센티브 설계, 규제 디테일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AI·반도체 등 첨단 분야 인력 양성이 병목변수가 될 수 있다”며, 교육부·과기정통부·산업부 협업 플랫폼 구축을 제안한다.
대외 변수도 만만치 않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이 ‘안보·경제 이익’을 동시에 지키려면 외교·통상 전략과 IT 산업 정책을 긴밀히 연동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결론적으로 이재명 대통령의 IT 공약은 ‘규모·속도·협업’을 내세운 야심찬 청사진이다. 성공 열쇠는 이해관계자 설득과 실행력에 달려 있다. 앞으로 6개월, 디지털 전환의 방향이 분명해질 때까지 시장의 눈은 청와대와 국회를 향할 것이다.
한국정보기술신문 정보기술분과 유상헌 기자 · 인공지능분과 김주호 기자 news@kitpa.org